가수 현미가 2023년 4월 4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후배 가수 정훈희를 비롯한 가요계에서 추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현미의 남편인 스타 작곡가 이봉조의 곡 '안개'(1967)로 인기 반열에 오른 후배 가수 정훈희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연예인 '끼'를 타고난 가요계 왕언니"라고 고인을 회상하며 울먹였습니다.
'안개'로 인연을 맺게 된 뒤 50여년간 현미를 친언니처럼 따랐다는 정훈희는 "우리는(가수들은) 노래는 다 잘하는데 그중에서도 끼를 타고난 사람이 있다. 현미 언니가 그런 사람이었다"며 "그때는 미군들 상대로 노래하니까 할리우드에서 하던 것들(퍼포먼스)을 했는데 춤을 정말 잘 췄고 허스키한 보이스도 독보적이었다. '언제 언니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라고 꿈에 젖었던 때가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옛날에는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는 분위기여서 무대에서 보여주진 않았지만, 대기실에서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성대모사도 현미 언니가 최고였다"며 "한 시간 넘는 쇼를 혼자 해도 거뜬히 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요즘 태어났으면 날아다녔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훈희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어색하기만 했던 연예계에 적응할 수 있던 것도 현미 덕분이라고 했다. 현미가 목욕탕, 미용실을 데리고 다니며 살뜰히 챙겨줬다고 했습니다.
그는 "해외 가요제에 나갈 때는 언니가 한복도 직접 챙겨서 보내주고, 드레스는 어떻게 입으라고 조언도 해줬다"며 "막냇동생처럼 챙겨주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셔서 너무 황망하다"고 했습니다.
가수 혜은이도 현미를 "따뜻한 선배"로 기억했습니다.
혜은이는 "1980년대 야간 업소에서 공연할 때 자주 뵀는데 잘 챙겨주셨다"며 "용감한 내면을 갖고 계셨고, 늘 노래를 파워풀하게 부르셔서 후배 가수로서 참 부러웠다. 건강하고 활발한 선생님이셨는데 (비보를 듣고) 너무 기가 막혔다"며 울먹거렸습니다.
현미는 가요계 내에서도 시원시원한 성격에 어디에서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왔던 인물로 꼽힙니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제가 데뷔할 때 이미 대선배셨던 분"이라며 "후배들에게 권위를 세우지 않고, 벽 없이 친구처럼 대해주셨던 분"이라고 고인과의 기억을 돌아봤습니다.
이 회장은 "2월 가수협회 총회 때 뵀을 때 어깨가 많이 굽으셔서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며 "그래도 항상 밝으시고, 어제 저녁에도 지인분들과 식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1970년대 이봉조 악단 소속으로 TBC 방송에 출연하며 현미와 연을 맺었다는 트럼펫연주가 최선배는 "고인은 성격이 활달하고 호탕한 면이 있었다"며 "참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현미와 친분이 두터운 한 공연 관계자는 역시 "사나흘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전화해서 안부를 여쭤보셨다"며 "갑작스러운 비보에 황망할 따름"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과 가요계에 따르면 4월 4일 오전 9시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현미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7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현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현미는 1938년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고향인 평양에서 거주하다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와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린 두 동생과 헤어졌다가 48년 만인 1998년에서야 동생 가운데 한 명과 중국에서 상봉했습니다.
현미는 이 같은 아픈 경험을 계기로 2020년에는 이산가족 고향체험 VR(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그는 우리 나이로 스무살 때인 1957년 그 당시 음악인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미8군 무대를 통해 연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일정을 펑크낸 어느 여가수의 대타로 마이크를 잡으면서 가수가 됐습니다.
현미는 이때부터 그를 눈여겨본 작곡가 고(故) 이봉조와 3년간 연애한 뒤 결혼했다. 다만 이들은 법적 부부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현미는 1962년 발표한 데뷔 음반에 수록된 '밤안개'로 큰 인기를 누렸고 남편 이봉조와 콤비를 이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연이어 히트곡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대표곡 '밤안개'는 전설적 재즈 가수 냇 킹 콜의 노래 '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It's A Lonesome Old Town)을 이봉조가 번안한 것이다. 현미와 이봉조는 라디오에서 원곡을 듣고 감명받아 우리말 가사를 붙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는 200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오게 되면 할 것이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고 음악 활동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현미는 이봉조와 사이에서 아들 둘(이영곤·영준)을 뒀습니다. 장남 이영곤은 과거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사랑은 유리 같은 것'으로 유명한 가수 원준희가 현미의 둘째 며느리다. 현미는 가수 노사연과 배우 한상진의 이모이기도 합니다.
빈소는 서울 중앙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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